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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털어놓고, 위로받고, 소화하기

사적인 글쓰기, 첫 번째 끄적거림. 털어놓고, 위로받고, 소화하기. 정신을 어지럽혔던 일이 있었을 때 썼던 글.
완성하지 못한 데다 아쉬운 점들이 많아 고치고 싶은 글이지만, 올리는 것에 의의를 둔다.


좀처럼 멘붕에 빠지거나 상처받지 않는 편이지만, 그런 내가 우습다는 듯이 세상은 갖가지 난관들을 선사하곤 한다. 짓궂게도 그 난관들은 매번 다른 종류의 것들이라서 익숙해질리도 만무하다. 하나의 생각에 빠져서 잠깐이면 끝낼 일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다 마무리하고 나면 어김없이 스스로가 한심하다.

그럴 때는 꼭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신기한 점은 매번 다른 주제마다 떠오르는 사람도 제각각이라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창자 깊숙히 있는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믿지 못할 사람이 되곤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내 솔직하고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다. 항상 내가 다치지 않고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주고 고려해주는 따뜻한 마음 때문에 내가 이 친구를 더 좋아하고, 의지하게 된다. 이 친구 덕분에 나 자신보다 남의 입장을 더 먼저 생각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내 사회적 자아가 고개를 쳐들 때도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머지 한 명은 우리 어머니다. 혈육이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존재 같아서 내 깊은 속내를 가감없이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오늘 점심은 무얼 먹었는지, 요즘 프로젝트의 퇴근 시간은 어떤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어머니가 영어 학원, 미술 화실에서 만난 아줌마들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언제 그런 복잡한 일들이 있었냐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의 힘이다.

털어놓고, 위로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후 남은 찌꺼기를 해소하는 일은 이제 오롯이 나의 영역이다. 내가 주로 선택하는 방법은 나가서 달리는 일이다. 머릿속의 잡념을 없애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몸을 혹사시키면 된다. 

아식스 운동화를 신고 보라매 공원으로 간다. 한 번 신어보고 감탄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산 운동화다. 색깔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바로 신고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질렀다.

최근에는 또 다른 신발에 꽂혔다. 나이키 운동화인데, 운동화 주제에 30만원이다. 이미 17만원짜리를 신고 있으면서 뭣 때문에 30만원 짜리를 사야 하나 싶다가도, 몇 안되는 취미 생활에 쓰는 건데 겨우 30만원이 뭐가 아깝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지는 않는다.

어쨌든 보라매 공원에 도착한다. 이 시기 보라매 공원의 서늘함은 뛰기에 가장 좋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다.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도 뛰는 데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사소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 두 바퀴를 지나면서 심박이 조금씩 빨라지고 몸이 데워지기 시작한다. 호흡은 두 번의 들숨과 두 번의 날숨으로만 이루어진다. 주변의 소음은 사라지고 이어폰에서 나오는 일렉 플레이리스트가 그걸 대체한다. 앞을 가로막는 산책러들과 트랙 바닥의 울퉁불퉁한 요철들을 피해 나가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공원에서의 달리기는 혼자 하는 것이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어서, 나보다 조금 빠른 페이스로 나를 앞질러 간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다시 앞질러 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바로 다시 따라잡히는 일은 쪽팔리는 일이다. 웬만하면 한 바퀴 정도는 그 페이스를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