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The University of Kansas
우선, 그 수업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에 할애한다. 6명이 한 팀을 이루어 전 세계의 각 대륙에서 동일한 상황에 놓인 스마트폰 업체를 운영하는 게임이다. 주어진 자원을 이용해서 공장 증설, 기술 개발, 프로모션, 타 시장 진출, 자금 조달과 같은 다양한 선택을 하고, 이익과 시장 평판 등을 기준으로 산출된 최종 점수로 승부를 가리는 게임이다. 이론 수업은 따로 없다. 학생들은 사전에 전달받은 온/오프라인 학습자료를 바탕으로 경영학 이론들을 "수업 전에 혼자" 공부할 뿐이다. 그리고 공부한 이론을 게임과 접목시켜 매주 교수가 내주는 보고서 과제를 해결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성적은 보고서의 수준, 게임의 결과, 최종 발표의 수준만으로 결정한다. (중간/기말고사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의 전공 강의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랐다. 모르는 사이에 나는 마치 경영전략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는 듯이 교수님이 칠판에 마이클 포터의 5 Forces에 관해서 적어주시면 학생들이 미친듯이 받아 적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교실에는 교수님의 목소리와 연필과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겠지. 시험 답안을 맞추기 위해 교수님이 했던 농담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하는 모습은 덤이겠고. 여기서 출석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수업에 못들어가면 교수님의 필기를 받아적을 수가 없으니까. 심지어 출결점수도 있다. 수업에 꼬박꼬박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불성실한 학생이다.
물론 교수 방식의 차원에서는 제각기 다른 장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암기 위주의 교육이 도움이 될 때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건,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도 이제는 지식의 전달과 암기 일변도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교수님보다 구글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세상에서, 대학 또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게 본인들의 역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교수 방식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출결제도나 상대평가 제도와 같이 예전부터 의심 없이 이어져 내려오던 각종 제도들 또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대학 서비스 구매자인 우리가 대학으로부터 출석을 강요받아야 할까? 대학 서비스의 목적은 배움(학업 성취 향상)일텐데, 출석이라는 요소가 그것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는 출석으로 평가받는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수업의 특정 부분만 듣고 싶었기 때문에, 가끔은 혼자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수업에 여섯 번 결석한 학생은 수업과 관련된 내용을 아무리 뛰어나게 이해했더라도 낙제 점수를 받는다. 한 학기 내내 몸만 강의실에 가 있었던 학생보다 낮은 점수를 말이다. 불성실했기 때문이다.
상대평가 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교에서 학점을 부여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상대평가 제도 하에서, 학점은 학생들을 줄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쉽게 고학점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어 초급 강의를 수강하는 준 원어민들 때문에 높은 수준의 성취를 보인 초급자가 낮은 학점을 받는 일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학생들은 학점에 대한 부담으로 기존 역량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 언어 수업 수강을 꺼린다. 물론 상대평가 제도가 학점 인플레이션 방지에는 꽤나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변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학내에서 자주 얘기가 나오는 생리공결 문제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대학 교육 시스템의 후진성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길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돈을 내고 수업을 듣는데, 아무리 해당 과목을 깊게 이해하더라도 아파서 결석을 하면 학점을 주지 못한단다. 이 얼마나 어이 없는 상황인가? 누군가는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한다. 누군가는 생리공결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을 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탓한다. 하지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개인의 선의에 기대어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은 올바로 된 시스템이 아니다. 이 문제를 남혐이네, 여혐이네 몰아갈 하등의 이유도 없다. 이건 그냥 대학 교육의 방식이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바뀌어야 한다.
예전에 학내 커뮤니티에 썼던 글을 다시 가져와서 수정함. 사실 글의 깊이에 비해 제목을 너무 자극적으로 지은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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