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공결 제도, 여전히 논란
요즘 생리공결 제도 이슈가 재점화되는 것 같다. 여러 대학에서 생리공결제도를 다시금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는 뉴스도 보인다. 대부분의 뉴스들이 생리공결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나 생리공결 제도를 도입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들에 대해서 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생리공결 제도의 당위성이나 그 부작용을 얘기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대학 교육 서비스가 아직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글(링크 - 생리공결 제도와 우리나라의 주입식 대학 교육)에서도 썼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논란의 대상인 생리공결제도 (출처: 네이버뉴스)
세상은 바뀌는데 교육은 그대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바꿀 수 있는 것, 바꾸어야 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 생활 양식을 바꾸고, 생각하는 방식마저도 바꾸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변화가 더딘 분야가 교육이다. 변화가 느린 분야 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대학 교육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학 교육 방식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전통적인 사고 방식은 이렇다. "강의는 강의실에서 들어야 한다. 가르쳐주시는 분은 교수님이다. 학생들은 예의를 갖추어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어디 그렇게만 돌아가나? 이제 우리는 책에서, 학원에서, 혹은 구글에서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배울 수 있다. 교수님보다 훨씬 친절하게 최신 정보를 가르쳐주는 은둔고수들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나만 하더라도 Coursera에 한 달에 59달러를 지불하고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제공하는 파이썬 코딩 수업을 듣고 있다. 물론 강의실에서 듣는 것도 아니다. 수업은 아주 만족스럽다. 장담컨대, 그 어떤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도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이 강의 만큼 친절한 수업은 듣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 출석 여부가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는 가장 큰 이유는 배움을 얻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대학이 우리에게 매기는 성적은 필요한 내용을 잘 배웠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세상은 변했고, 배움의 방식도 변했다. 출결은 배움의 정도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강의에 단 한 번을 참석하지 않아도 우리는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출결이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곤 우리가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심지어 생리통이 있어도 학교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했다는 것밖에 없다.
출결을 강요하는 제도가 근본적인 문제
세상이 바뀌었으면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서 현재 방식을 고수하면 남는 것은 도태밖에 없다. 학교는 출결을 빌미로 학생들을 강제로 수업에 참여시키면 안된다. 수업에 참석하지 않으면 학생 스스로가 손해라고 느낄 만큼의 좋은 수업을 제공하는 것이 대학이 할 일이다. 이유 불문하고 모두를 같은 조건에 때려박아놓고 같은 방식으로 학습시키는 건 이제 할 만큼 했다.
게다가 대학생에게 수업 참석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수업 시간에 돈을 벌어야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취업 면접이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생리통이 심해서 수업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이유가 어떻든, 학습 방식을 결정할 권한은 학생 자신에게 있다. 누군가는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누군가는 혼자 공부하다 교수님께 질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 맘대로 공부하게 좀 냅두고, 잘 배웠는지만 평가하는 게 맞지 않나.
심지어 대학은 의무교육 기관도 아니다. 대학생은 의무적으로 수업에 참석해야만 하는 초, 중, 고딩도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만 싸우자, 생리 탓 하지 말고
그러니까 생리 가지고 좀 싸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군가는 아파 죽겠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게 뭐 대수냐고 한다. 누군가는 배가 아파서 교수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데 강의실에 앉아 있고, 누군가는 여행 기간에 맞춰 생리공결 제도를 악용한다. 그리고 서로 잘못했다고 헐뜯는다. 불공평하다고 얘기한다.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생리통이 심한 사람, 생리공결제를 악용하는 사람, 생리공결 제도가 불공평하다고 볼멘소리를 내뱉는 사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생리를 기어코 증명해야 학점을 인정해주겠다는 대학을 탓해야 한다. 면접 일정을 학기 중에 잡은 기업을 탓할 일이 아니다. 니가 면접을 보든 말든 잘 모르겠고 출석이나 하라는 대학을 탓해야 한다. 내 돈을 받고 수업을 제공하면서 내 밥벌이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대학의 아집과 고지식함을 탓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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