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Wonderland: How Play Made the Modern World
Steven Johnson
위대한 것은 때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우리 사회가 재미를 추구하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와 친구들이 즐기던 만화나 게임 같은 것들은 종종 불온한 것으로 지적받기 일쑤였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큰 사람이 되려면 근면성실하라고 가르쳤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몰입이 큰 사람이 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미덕이었던 시대를 지나오면서 몸에 밴 습관 때문일 게다. 그 탓인지는 모르나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법, 몰입하는 법을 모르는 채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여가시간은 가장 적고 일은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하지 않나.
책 "원더랜드”는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이나 선생님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이다. 거창한 계획과 의도 아래에서 만들어졌을 법한 위대한 것들이 사실은 사소한 재미를 추구하는 일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소비 행태나 민주주의의 태동, 컴퓨터의 대중화, 화학 산업과 재료과학 등 공학부터 사회 체계에 이르는 다양한 것들이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룩된 민주주의가 사실은 우리에게 각성 효과와 즐거움을 선사했던 커피를 마시는 모임에서 시작되었고, 오늘날 우리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우주전쟁!>이라는 하나의 컴퓨터 게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향유하고 있는 것들의 기원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사소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위대한 결과를 이룩하는 것만은 아니다.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가 주는 특별한 맛을 갈구하는 행위는 새로운 방식의 항해법과 새로운 구조의 기업 형태를 발명하게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식민지가 착취당하고, 노예 무역이 지속되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재미라는 것이 인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학창 시절에 수학이라는 과목을 유달리 좋아했다. 대학 입시에서 수학 실력의 덕을 보기도 했고 말이다. 학창 시절에 내가 수학을 잘했던 이유는 단순히 수학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입시에 중요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재미있어서 더 많이 공부했고, 그래서 더 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후추니, 수학이니 따질 것도 없이 오늘날의 인류 문명 자체가 어쩌면 쾌락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지구 전체에 자리잡은 인류 문명의 기반에는 강력한 번식력이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번식력 또한 쾌락과 즐거움을 좇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어린 학생들과 그 부모님들이 읽어보았으면 한다. 그냥 열심히 하는 사람, 공부만 하는 사람보다 하나에 미쳐서 그 분야를 깊게 팔 수 있는 “덕후”들이 세상을 평정하는 시대다. 공자 또한 말씀하시길,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했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혁신들이 사실은 재미를 추구하는 작은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이 깨닫게 되었으면 한다. 네가 하고 있는 그 재미있는 무언가가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당신의 자녀들이 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그들이 좋은 어른이 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즐길 줄 아는, 놀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개인적인 감상을 쓰자면, 재미 없었다. 요즘 어떤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 그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 어쩔 수 없이 읽었다. 그마저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
이 책이 읽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 우선, 이 책을 통해 뭘 배울 수 있는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두 부류의 책을 주로 읽는다. 재미있거나, 혹은 배울 것이 있거나. 후자의 경우, 책 안에 있는 지식의 양보다 그 책이 나에게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책은 그런 메시지나 배울 것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 이런 역사가 있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책이었다.
둘째, 책의 많은 부분에서 논리적 비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상사 많은 것들의 시작에는 "그냥 재미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근데 명확한 논리적 설명이 없는 듯한 느낌. 길게 말하긴 어렵지만... 계속 거부감이 들었다. 후추가 그렇게 높은 값을 받고 동서양을 가로질러 유통된 이유가 단순히 맛 때문일까? 그것 외에도 인간의 허영, 사치품 성격, 상품의 가격, 화폐의 역할과 관련하여 생각할 것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놀이, 즐거움, 재미에 대한 가치가 높아져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어디 가서 한 마디 써먹을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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