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데 말뚝 박고, 생가지보다 마른 가지 꺾는 법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니까 사기 치는 것이다. (...중략...)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서글픈 두 번째 공식이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
누구나 바라듯 나 역시 영민 씨에게 법이 늘 강자 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민 씨가 정말 세상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으면 했다. 진 꽃은 다시 필 수 있지만,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 (...) 이 씨를 불렀다. 그냥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되지만 마지막으로 고약한 이 씨에게 탐욕의 대가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커피를 한 잔 타서 주면서 세입자들에 대한 배당이의 신처응ㄹ 취소하고 엄 사장과 윤 회장에 대한 고소도 취하하라고 말했다. 설득할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그 뒤에 이어지는 혹독한 질문은 오로지 당신이 초래한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려는 것일 뿐이었다.
"정화빌딩이 선생님의 것입니까?"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한 그렇다고 했다. (...) 그 후로 이 씨가 전혀 답하지 못하는 질문만 30분 넘게 해댔다.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우습게 여기고, 세상 우습게 여기고, 검사를 우습게 여긴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해주는 데는 한참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 마지막으로 한 마디는 해주었다. "하늘이 두 쪽 났네요."
(...) 일당들이 구속된 후 나는 서울중앙지검을 떠나기 전에 영민 씨를 불렀다. 그에게 뭔가 멋진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 바보 같게도 나는 그에게 살다 보니 세상이 다 사기 같다고 말했다. 영민 씨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더욱 그렇다고 했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 횡설수설을 다 들어주던 영민 씨는 가방에서 팩우유를 꺼내 우리 방에 있던 믹스커피 두 봉을 탔다. 팩우유를 흔들던 영민 씨는 더블 샷이라고 말하며 내게 웃어 보였다. 청년의 웃음이 그리 무거운 것은 처음이었다. (...) 때로 실망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세상의 영민 씨들을 응원할 것이다.
청년들이 쉬운 먹잇감인 이유는 자신들이 초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생존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야수를 만나면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청년들은 문제가 터졌을 때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초동 대응부터 문제다. 일이 터지면 혼자 해결해보려고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끙끙대면서 그저 잘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게 전부일 경우가 많다. 일이 커지면 도움을 구하기도 하지만, 이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족이나 부모보다는 세상에 대해 자기만큼이나 알지 못하는 친구나 선배들에게 의지한다.
판사나 검사들은 자신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반성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험 성적 좋은 것 외에 그다지 특출할 것 없는 판사나 검사 앞에서 갑자기 개과천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판장 앞에서 눈물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엄중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거다. 만에 하나 후회 같은 걸 한다면 그건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잡힌 상황에 대한 후회일 가능성이 높다. 파렴치범들은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들을 개과천선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백면서생이 꿈꾸는 상황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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