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 빨았던" 이야기
우리 사무실 주니어들은 서로 워낙 친한 편이라 상사 욕에서부터 연애 얘기까지 가리는 주제 없이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그렇게 친하다보니 건수만 있으면 자리를 만들어서 만나는 편인데, 몇 주 전에는 다 같이 신년회 자리에 모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날도 어김없이 흔치 않은 외양과 성미 때문에 사무실 사람들의 단골 대화 주제였던 한 상사가 대화의 중심이 됐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듣지 않는다거나, 자주 짜증을 낸다거나 하는 그 상사의 단점에 대한 얘기가 오갔고, 이윽고 대화 내용은 "거구"라고 불릴 법한 그 여자 상사의 외모에 대한 비아냥으로 이어졌다. 꽤나 모욕적인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차례의 인신공격성 발언 이후, 나는 비하 발언을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내가 그 분과 가장 가깝게 일하는 만큼 성격적, 업무적 단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외모를 지적하고 비하하는 발언은 좋지 않으니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 대화가 단순히 누군가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폭력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공적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여러 사람이 거기에 동조하는(혹은 묵인하는) 모습은 이런 비물리적인 폭력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어찌되었든, 다행히도 동료들은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나) 나를 유별난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내 요구에 응해주었다.
나는 왜 그렇게 얘기했을까? 내가 인격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라서? 물론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고, 누군가가 나를 바른 사람이라고 평가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정의로운 척 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찌되었든 내가 소위 “진지 빠는” 말을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모임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얘기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 발언이 수업 중 교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면, 회사의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내가 그런 말을 꺼냈을 때 “눈치 없는 새끼”라며 주변 동료가 나에게 눈치를 주는 상황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허허허, 하고 웃으며 넘길 공산이 컸을 것이다. 결국 동기들끼리 모여 있었던, 남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는 거다.
"우쭈쭈, 말해도 괜찮아요"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사람들이 당당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위계”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아는 말이기는 하지만.) 초면인 두 사람이 만나면 이름을 소개한 다음 바로 나이부터 물어보는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윗사람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보다 한참 어른인 분의 말이 틀렸다고 하면 따박따박 말대답 하는 버릇없는 놈이 되니까. 결국 위계의 아래 지점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불만을 이야기하지 못해 끙끙 앓게 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지 못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그렇게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잉태된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나는 우선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윗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 회식이니까 다 자유롭게 말해 봐. 나 오픈마인드인 거 알지?” 하면 아-무도 말 안한다. 말 못하는 거 당신도 알잖아? 평소에 뭐 말만 했다 하면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넌 어려서 안되고 넌 생각이 없고. 이 지랄 해놓고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하면 얼씨구나 잘도 말하겠다. 말 한 마디, 행동 한 번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동생, 부하, 자식들에게 사소한 부분이라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비록 몸 쪽으로 꽉 찬 돌직구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아랫사람이 옳은 소리를 했을 때 아무 탈도 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 집단, 조직, 사회의 구성원들이 조금씩 더 솔직한 말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더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쪼렙이라도 겁먹지 말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보는 건...
여기서 끝이 아니다. 후배들, 동생들도 언제까지고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조금 두렵더라도 한 번 더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냥 바짝 엎드린 채로 상하관계라서, 우리 사회가 꽉 막혀서, 밥벌이가 중요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고개 조아리면 결국 호호백발이 될 때까지 바뀌는 건 없다. 조금 민망하더라도, 어쩌면 조금은 유별난 사람이 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비하 발언을 하는 상사에게 호통을 칠 수는 없지만, “요즘 그렇게 말씀하시면 위험하다”고 말하는 작은 용기도 필요하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사회 탓만 하면 결국 바뀌는 건 없다. 나만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작은 결심을 행동에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윗사람으로 있는 조직에서 혹여 부담감을 느낄 수 있는 후배들에게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압박과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혹시라도 남자든 여자든 부당하고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을 겪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나에게 어려움 없이 이야기하라고. 내가 성심성의껏 들어주고 전력을 다해서 문제 해결을 돕겠다고 말이다. 이 말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이나마 누군가 스스로 조심하게 되고, 누군가 안심하게 될 수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문제가 당연해질 때 큰 문제가 된다
쥐뿔도 아닌 일에 유난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볍게 하는 말에 예민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꼭 심각하고 엄중한 일에 대해서만 진지하게 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소한 폭력을 저지하지 않고 그대로 둘 때, 그 폭력은 서서히 우리에게 당연해진다. 그리고 그 작은 폭력이 당연해질 때, 정말로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위계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유연함과 도움, 그리고 사소한 일에 참지 않는 작은 용기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점진적으로나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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