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아빠가 되는 시간 - 부모됨은 무겁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무게만큼의 것을 알게 한다

헐떡이는 개 2019. 1. 3. 00:26

예전에 부모공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아주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을 본 이후부터 아이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무겁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생명을 낳아서 양육한다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습관적으로 하는 말 중 하나가 "결혼은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출산은 완전히 다른 얘긴 것 같아.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고, 내 인생을 다 바칠 준비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 책도 양육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였겠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상은 육아에 대한 어려움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그 연장선에서 "아빠가 되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간 때우기 위해서, 나중에 아이를 양육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남성이고, 워커홀릭이었고(나는 자발적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육아를 위해 육아휴직을 했다는 점이 와닿았다. 김소영 님이 인스타에 올린 리뷰도 한 몫 했다. 스크린샷을 찍어 두고 언젠가 한 번 봐야지, 했던 차였다.

나름대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자연출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자연분만과 자연출산이 뭐가 다른지도 몰랐거든. 자연출산은 흔히 말하는 자연분만과 조금 다르게 출산 과정에서 의사와 약물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촉진제 없이 진통이 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고, 무통 주사나 관장도 하지 않고,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한다.

모성애/부성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이의 수면은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육아의 과정에서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감내하면 좋을지, 육아의 과정에서 부부에게는 어떤 갈등이 생기는지 등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아이의 성장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지까지 적혀 있었다. 저자의 시행착오에서 우러난 많은 기록들이었던 만큼 조금 더 현실감 있고 재미있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아이에게 30년 후에 건네줄 편지 쓰기, 돌잔치를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 아이를 위한 동화를 만드는 방법 등 별난 내용도 많다). 저자가 방송궁 작가? PD인데, 직업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자질구레한 내용들은 금방 잊기 마련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될 때까지 기억이 남아있기는 커녕 일주일 뒤면 잊게 될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대목이었다. 이 말만 두고 보면 교과서적인 표현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아이를 아이로 보기보다 "작은 어른"으로 볼 때가 많다. 빨리 정해진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데 옷도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면 화가 난다. 하지만 급한 건 내 사정이다.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지만, 이는 아이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유치원 가야 하는데 밥을 안먹는다. 왜 밥을 먹어야 하는지, 빨리 유치원에 가야된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아이를 설득해도 먹힐 리가 없다. 아이는 우리처럼 사고하지 않으니까. 그것보다는 다음주에 가기로 한 동물원 호랑이에게 전화 통화를 해서 밥 잘 먹는 어린이만 보겠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쪽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

말이 길었다.

종종 연애에 관해서 주변 친구들이 고민을 상담해올 때가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연애 관련된 고민들이 넘쳐난다. 그런 비슷비슷한 고민들을 수차례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건, 연애라고 보통의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연애라는 관계에 특수성이 있기는 하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연애나 보통의 인간 관계나 친구 관계나 모두 같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같다고 느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 부모자식 간에도 관계의 우위가 존재한다는 것. 화는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 몇몇 특수성은 있을지언정, 그 본질적인 관계는 다른 인간관계와 같다.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과 다름없다.

좋은 사람이 되자. 좋은 부모가 되자.